긴 싸움

황재민

1월 15일 마침내 집행된 내란 주범의 체포와, 뒤이어 진행된 구속을 환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마음을 놓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아직 이른 것처럼 보인다. 12월 3일 이후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왔다. 수사적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보다 약간 더 복잡한 감각, 이를테면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 뒤 시차를 두고 물질화되는 증상에 대한 자기 말하기에 가까울 테다. 12월 3일 오후 10시 28분 선포된 비상계엄은 분명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 후 출범한 권한대행 체제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는 등 의도적인 태업을 자행했고, 탄핵안 심리가 지연되는 사이 주범 측은 비상계엄이 적법한 통치 행위이며, 실패한 계엄은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궤변으로 기회주의적 담론화를 시도했다. 또한 대통령 경호처는 권한정지된 주범을 엄호하기 위하여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조직된 유무형의 힘은 법리를 사유화하고,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망가진 정치의 장소로부터 반동의 힘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기에, 일상으로의 복귀는 요원하며 싸움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

주범은 시급히, 그리고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란 이후 주범을 비호하고 나선 정치적 관계 일체가 일소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긴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abs 7호는 이러한 준비 속에서 급히 쓰였다.

그러므로 abs 7호의 주제는 시국과 미술이다. 12월 3일은 실제로 하나의 단절 지점이다. 그날 이후 삶을 지속한다는 것, 생각하고 말하고 작업한다는 것, 미술관을 찾는다는 것은 그 이전과 다른 경험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12월 3일 이후 미술관을 찾았을 때, 어떠한 낯섦을 느끼는 것은 우리 중 누구일까? 정치의 장소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감각, 광장의 연대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감각이 신체에 엄습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한다. 다만 우리의 일을 하는 것이 침묵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파손된 정치에의 공모로 배치될지 모른다는 의심을 묵과할 수 없다. 미술은 언제나 정치와 다양한 방식으로 뒤얽혀 있었다. 그렇지만 정치의 이름을 빌려 선진적 담론을 수입하고, 제도의 영역에서 그것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등, 예의 ‘다양함’은 공모로 향하는 샛길을 닦기도 했다. 정치와 미술의 필연적 얽힘을 가능한 가시화하면서도, 미술이 정치를 관리해 온 방식 너머로 정치와 미술 양자를 흘러넘치게 만들기 위하여,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잡거나 혹은 용기를 내어야 할까? abs는 내란이라는 지금 여기의 사건을 각자의 가장 사적인 기관인 입과 손을 통한 대화를 통하여 맞아들이며, 미술과 글쓰기가 배치되는 방식에 대한 주권을 되찾고자 애쓴다.

김지율은 광장에 솟은 피켓, 그리고 깃발에 주목했다. 그것은 글쓰기와 비슷하다. 깃발 위 ‘아무 말’과 소수자의 자기 발화가 다수결의 논리에서 튕겨 나오는 의미를 잡아채고, 그렇게 광장 안에 긴장을 만든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김여명은 부끄러움에 대해 쓴다. 모두 일상으로의 복귀를 말한다. 하지만 믿음이 깨어지고 정치가 붕괴한 시대에, 되돌아갈 일상이 과연 있는 걸까? 돌아갈 곳이 없기에 계속 싸우는 수밖에 없고, 부끄러움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정서재현은 12월 3일 그날 국회 앞으로 달려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공동체가 불가능하며, 공통 감각이 무너진 시대라고들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우리는 우리가 타인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또한 황재민은 비상계엄의, 내란의 가능 조건을 검토한다. 어쩌면 우리는 내란이 어떻게 실행되고 진행되었는지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상상될 수 있었는지 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진영은 가벼운 말하기의 무게와 매끄러운 이미지의 속도에 대해 생각한다.

7호에서 abs는 (lock with ink pen)에 정여름을, 🥠에 더미덤피이미지를 초대했다. 정여름은 〈조용한 선박들(The Silent Bearers)〉(2023)을 찍은 기억을 돌이킨다. 기록하고 재현하는 일이 주는 무력감, 경험을 증여받은 이의 무력감 속에서 쓰인 글은, 그럼에도 누락된 기억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의 필요성을 곱씹는다. 사진 담론의 미싱 링크를 찾고 보수하는 웹진 더미덤피이미지는 집회에 나갔거나 나가지 못한 여자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보내고 사진을 받았다. abs는 더미덤피이미지와 함께 사진에 관하여, 웹진에 관하여, 이미지에 관하여 이야기 나누었다.

이번에 우리는 실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다음에 올 것은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싸움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7호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