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조각 진짜 계심

황재민



시간이 지난 뒤 언젠가 2022년의 한국 미술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무엇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될까? 이를테면 시장(“그래서 그 아트페어들이 실제로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나요?”), 또는 기술(“그래서 NFT가 비트코인이라는 거죠?”), 그리고 국내외의 큼직한 행사들까지(“정치가 유행이었다니 다행이네요!”),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중 가장 뚜렷하게 떠오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건 조각일지 모른다.


abs 4호는 조각에 대해 다룬다. 2022년은 유달리 인상적인 조각 전시가 많이 열린 해였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은 《조각충동》(2022. 06 09 ~ 08. 15)을 열어 동시대 조각가들의 작업과 그 경향을 크게 펼쳐 놓고자 했고,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린 전시 《각》(2022. 05.28 ~ 07.17)은 1998년에서 2022년에 이르는 조각의 타임라인을 그렸다. 전시 공간 WESS에서 진행된 《조각 여정: 오늘이 있기까지》(2022. 06. 10 ~ 07. 09)의 경우 조각의 지난 역사를 추적하는 하나의 “여정”을 기록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일민미술관에서는 권오상과 최하늘의 2인전 《나를 닮은 사람》(2022. 08. 23 ~ 10. 02)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정서영의 개인전 《오늘 본 것》(2022. 09. 01 ~ 11. 13)이 각각 열리거나 열릴 예정이다. (이 외에도 여러 사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조각이, 한때 희미한 개념처럼 여겨졌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과거 조각이 운용하거나 가정할 수 있는 특정한 조건(들)은 또 다른 조건으로 충분히 환원될 수 있을 듯 여겨졌으며 나아가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윤곽을 드러낸 조각의 어떤 순간들은, 그런 환원으로부터 벗어나, ‘조각’에 잠시 괄호를 침으로써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는지, 어떤 원리로 서있을 수 있는지, 바닥에 붙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다면 대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등. 조각은 지금 가장 확실한 흐름으로 등장해 모종의 ‘폐기학습(Unlearning)’을 요구하는 절단면으로 기능한다. abs는 조각을 ‘조각’으로 바라보기 위하여 생각을 모았다.


김호원은 3D 프린터에 주목한다. 그것은 최신의 물질 생산 기법으로써, 제조업 뿐만 아니라 조각에서도 유용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3D 프린팅이 일반적으로 인공적인 것으로 여겨짐에도, 그 공정에서는 언제나 ‘자연적인’ 흔적이, 의도하지 않은 단층자국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김호원은 이 자국으로부터 출발해 자연과 인공이, 땅과 조각이 얽히는 오늘날 작업 환경의 지도를 그린다. 한편 황재민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은 “왜 조각을 말하는 것이 이처럼 어렵게 느껴지는가?”라는 내용이다. 황재민의 관점에서, 이 질문에 답을 내고 조각을 말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도약이 필요한데, 그는 그 도약의 계기를 하이트컬렉션에서 열린 전시 《각》으로부터 찾고자 한다. 정서재현은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전시 《조각충동》을 살펴본다. 이 “충동”에는 무언가 수상한 점이 있다. 전시는 분명 ‘조각’을 하나로 묶고자 하지만, 전시된 작업은 ‘조각’을 계속해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와 작업이 만드는 불일치는 결국 ‘조각’과 그것의 시간을 영영 잃어버리게 만드는데… 정서재현은 이 잃어버린 조각의 시간을 찾아내기 위하여, 무의식의 영역에서 솟아나는 비의지적 기억에 의지한다. 문이삭, 오제성, 황수연의 작업은 여기서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김얼터는 우리를 새로운 판단의 공간으로 유도할 것이다. 조각과 같은 전통적 매체는 죽음과 떼놓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혹은 미처 죽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김여명은 무자비하게 살해된 조각을 구출하기 위해 하나의 평행 우주를 상상한다. 여기서 조각, 나아가 회화는 차원이라는 개념 속에서 또 다른 몸체를 얻고, 그렇게 변화한 좌표 속에서 조각과 회화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게 될지도 모른다. 박정서의 글은 조각의 시간을 돌이켜 본다. 그는 1909년 발견된 기원 전의 조각 ‘빌렌도르프의 베누스(Venus of Willendorf)’에서부터 출발, 조각의 역사를 소묘한다. 그리고 이 소묘의 목적은 분명하다. 박정서에게 조각은 한결 같이 정령을 품고 있는 신묘한 대상이기에, 이 장대한 소묘 속에서 조각이 품은 우주의 진리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lock with ink pen)과 🥠를 소개한다. 두 코너는 abs의 고정 코너로, 이번 호에는 하상현과 《조각 여정》을 공동 기획하고 참여한 이유성, 홍기하가 함께 한다.


(lock with ink pen)에 참여한 하상현은 요나스 메카스와 호세 루이스 게린의 〈서신교환 4〉, 칼 안드레의 〈등가 Ⅷ〉, 최고은의 전시 《Torso》(2016. 08. 05 ~ 09. 25), 《Vivid Cuts》(2021. 11. 12 ~ 12. 11)를 찬찬히 살피고 눈과 손과 행위와 노동에 대해, 몸과 조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서 이유성과 홍기하는 《조각 여정》에 뒤따른 여정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조각은 낡은 것일까, 새로운 것일까? 잠시 유행하는 것일까, 영속하는 것일까? 몇 가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결국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