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sses

김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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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k with ink pen)은 이모지 🔏를 풀어 쓴 코너의 제목처럼, 이미지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텍스트를 게재하는 코너다. 작업이거나, 작업에 관련되었거나, 지금은 작업과 뚜렷한 관계가 없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도 모르는 텍스트를 요청한다.

김무영 김무영은 ⟪도끼와 모조머리들Axe and dummy heads⟫(인사미술공간, 2020)과 ⟪I told you I was no good. Bitch, are you sure to make me cry?⟫(갤러리175, 2021)의 전시에 참여했다.

1.

성 제발트의 성골함을 기록한 도판집은 이 성골함의 뼈대에서 자라나거나 새겨져 있는 인물 조각들을 이야기별로 촬영해 나열해 두었는데, 그 중 ‘눈먼 자를 고치심(Heilung des Blinden)’ 이라는 제목이 달린 장이 있다. 대부분의 다른 사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풍경이 두 쪽에 걸쳐 인쇄되어 있지만 풍경의 정중앙에 사람의 머리가 있었던 상황과 제본 공정의 실수 때문에 페이지 사이 홈에서 같은 얼굴이 두 번 반복되어 인쇄되어 있다. 머리는 하나일 때도 선글라스는 눈처럼 두 알이라서 표면에서 같은 풍경을 양옆으로 두 번 보여준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눈동자 속 제 모습을 제 두 눈으로 볼 때 그 사람 얼굴이 가진 두 개의 눈알 중 하나를 선택한 뒤 보는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매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처럼, 이 책의 홈에서 이탈해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진 얼굴의 표면이 어디서부터 쪼그라들어 본래의 가장자리가 되어야 하는지는 보고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다음으로, 양 페이지에서 서로를 바라보도록 인쇄된 두 사람, 그 순서가 아니라면 마주 보는 두 사람이 양 페이지로 뜯겨 갈라선 책 페이지의 모습이 있다. 두 사람의 이미지가 책으로 펼쳐질 때 서로를 완벽히 마주 보아야 할 두 쌍의 눈동자는 갈매기 모양으로 펼쳐진 책의 곡률에 갇혀, 서로의 얼굴이 버젓이 맺혀있을 상대의 눈동자에 미처 도달하지 못하는 동시에 너머를 뚫는다. 두 명이 마주 보려면 모두 고개를 안쪽으로 돌리고 눈을 맞추어야 하는 데 반해, 한 사람이 카메라를 쳐다본다면, 이 영상 속 하나의 머리는 이제 잠재적으로 무한히 많은 머리들과 동시에 눈을 맞출 수 있게 된다. 숏/리버스숏은 한 배우가 다른 배우가 있는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연출한 뒤, 다른 배우가 첫 번째 배우를 돌아보는 모습을 연출하는 영화 기법이다. 두 배우의 고개가 반대 방향으로, 즉 안쪽으로 꺾여있기 때문에 관객은 이 두 배우가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고 가정한다. 한 번의 화면에 단 한 명만 나오지만 화면마다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명암의 닮음, 건축의 반복이 마치 책장의 홈처럼 둘을 봉합하고 있다. 렌즈가 여과한 화면에서 시선의 동시성에 대한 정황은 잇기 위해 자르는 절차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2.

두 개의 독립된 머리와 목을 갖고 어깨 아래부터는 한 몸인 Y형 일란성 샴쌍둥이가 한 화면에 잡힌다. 둘은 말을 하기 시작한 나이 즈음이다. 늘 건강했던 둘은 갑자기 그들 머리 사이에 둘의 머리만 한 혹이 생겨 분리 수술을 하게 된다. 부모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 한 명만 살아남았을 때의 두 가지 그림을 마음속에서 무한히 시뮬레이션해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는 그들이 껴안은 이 동물적인 리허설과 무관하게, 수술을 집도할 의사의 경험치, 현대 의학의 선례들, 두 자매가 공유하는 내장의 상태가 그 순간 누구에게 더 우호적이었는지 등으로 미루어 수술로 결국 누구를 죽일 것인지 미리 안내받았을 것이다. 둘 중 한 아기가 두 팔을 사용해 어머니의 얼굴을 만지고 있고, 카메라는 그 두 팔의 여전한 주인이지만 그것이 만지는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지 않는 머리 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패닝 한다. 이 순간을 마지막으로 화면은 꽤 오랫동안 암전되고, 다음 화면은 직전에 걸렸던 아이 얼굴을 좀 더 가까이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화면은 다음으로 그 아이 머리와 인접한 팔을 나선형으로 휘감은 흉터를 보여준다. 관객은 이 아이들의 생김새를 바로 변별하지 못하더라도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샴쌍둥이를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익숙한 번역 감각으로 처참할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화면에 안 나온 머리가 하나 더 있고 그것을 아직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화면의 크롭과 두 자매의 물리적 잘림을 일치시키는 가학적이고 아주 논리적인 공포가 발생한다. 카메라는, 예상해버린 내용에 대한 가책을 줌 아웃하며 최대한 천천히 보여준다. 화면의 여백이 벌어지는 느린 속도는 관객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아무런 반전 없이 그 얼굴 옆에 다른 얼굴이 이제는 없다는 것, 하나의 몸에 하나의 머리만 달린 살아남은 아이의 온몸을 천천히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로 했을 때 제작진이 이 사건의 발생—분리 수술—을 예상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나에게 상상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지만, 내가 보고 있는 완성된 영상에서 이 장면은 견디기 힘든 절정의 순간으로 편집되어 도착해 있었다. 어떤 기계의 가장 간단한 조작들(패닝—암전—줌아웃)로, 정작 기계가 가장 기계다운 소임을 다할 때 내 몸과 마음이 맺은 밑바닥의 조건이 거북하게 드러난 듯했다. 눈—공포와 슬픔, 입과 고개—자아와 섭취에 대한 통제권, 어깨 아래의 모든 기관—폭력과 죄책감.